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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란?

점자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한글의 형태를 선이나 점선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작고 둥근 6개의 점을 볼록하게 돌출되도록 만든 것이다.

점자는 6개의 점이 모여 한 칸이 된다. 이 6개의 점은 세로로 3점, 가로로 2점으로 구성되며, 각 점에 1에서 6까지의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이 6개의 점 중에 어떤 점을 돌출시키는 지에 따라 63개의 각각 다른 점형이 생기며, 이 점형에 의미가 부여된 문자이다. 한글의 경우, 초성과 모음, 종성 각각에 점형이 다르게 약속되어 있다. 예를 들어, ‘책’이라는 글자를 점자로 쓰기 위해서는‘ㅊ’ ‘ㅐ’ ‘ㄱ’으로 풀어쓴다.

흔히 지하철 안내도나 엘리베이터 버튼 등에서 점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6점구성 및 점자 읽는 이미지

점자의 역사

초기에는 왁스로 만든 판 위에 쓰기, 나무에 글자 새기기, 철사로 글자 모양 만들기, 다른 두께의 실에 간격을 두어 매듭 짓기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 뒤 프랑스의 Valentin Hauy(1745 ~ 1822)가 로마체를 양각으로 인쇄하는 최초의 양각 선문자를 창안하였고, 미국의Samuel Gridley Howe(1801 ~ 1876)는 로마체의 각도를 수정한 보스톤 선문자(Boston Line Type)를 개발하였다.

이러한 초기 점자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은 William Moon(1818 ~ 1894)이 개발한 것으로, 로마체 대문자를 핀포인트로 테두리만 사용하였다. 이 Moon Type은 영국의 여러 기관에서 공식적인 문체로 사용되었으며, 미국에서도 1940년대까지 중도 실명자나 점자를 익힐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용되었다.

프랑스의 Charles Barbier는 세로로 6점, 가로로 2점인 12점의 칸을 창모양에 홈이 파인 쓰기 판을 개발하여, 군대에서 야간 문자의 신호 코드로 활용하였다. Barbier가 파리 맹학교에 이것을 소개했을 때, 학생이었던 Louis Braille(1809 ~ 1852)는 감명을 받고 이 체계를 받아들여, 세로로 3점, 가로로 2점으로 된 6점이 한 칸인 점자를 개발하였다. 1834년 25세의 나이에 Braille 점자를 발표했으나, 자신의 학교에서도 그가 죽은지 2년 뒤인 1854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국은 Braille 점자를 받아들였고, 1905년에 3단계의 개정 점자를 공포했다. 1단계는 문자를 그대로 철자화하는 것이며, 2단계는 약간의 약자를 사용한 것이고, 3단계는 매우 축약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뉴욕 맹학교의 교장이었던 William Bell Wait(1839 ~ 1916)가 세로로 2점, 가로로 2점인 총 4점으로 구성된 뉴욕 점자를 고안하였고, 퍼킨스 맹학교 음악 교사 Joel Smith는 Braille 미국 점자를 개발하였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거의 같은 수의 맹학생들이 뉴욕 점자, 미국 점자, Braille 점자, 보스턴 선문자 등을 사용하였고, 이렇게 다른 점 체계가 충돌함에 따라 이른바 “점 전쟁(The War of Dots)”이라는 전문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이 서로 다른 점자를 사용한 데에서“약자 전쟁(The War of Contraction)”이라는 양국간의 논쟁을 거쳐 1932년 영국의 2종 점자를 표준 영어 점자로 채택하는 통일된 점자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 출처:
  • Holbrook, M. C., & Koinig, A. J. (2000). Foundations of education. NY: AFB Press.
    임안수(2000). 시각장애아 교육 기초. 서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Louis Braille

루이 브라이유(Louis Braille, 1809~1852)

루이 브라이유 사진

브라유는 파리 근교의 조그마한 고장인 꾸쁘브레이에서 마구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세살때, 아버지의 공방에서 칼을 가지고 놀다가 한 눈을 다쳤고, 그 후 남은 눈마저 시력을 상실했다. 그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때, 그의 아버지는 판자에 못을 박아 양각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10세 때 파리 맹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그 곳에 교사로 근무하다가 1852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52년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프랑스 역사상 불후의 명성을 남긴 위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파리에 있는 빤떼옹 국립 묘지에 이장하기로 결정하였다.

브라유가 점자를 발명하게 된 것은 당시 프랑스의 군 장교였던 바르비에(Charles B arbier)가 발명한 야간 문자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의 야간 문자(Ecriture Noctur ne)는 군사용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는 점으로 된 것으로서, 위에서 아래로 6점, 좌우 2줄로 모두 12점으로 구성되었고, 이 때 사용했던 점자 필기 도구는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점자판, 점필과 비슷했다. 바르비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야간 문자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1821년 파리 맹학교에서 그 문자를 시범해 보였다. 당시 파리 맹학교에 재학 중이던 브라유는 야간 문자를 보고 위에서 아래로 6점을 한 번에 지각하기에 너무 길다는 것을 발견하고, 점칸을 반으로 줄여 위에서 아래로 3점, 좌우 2줄 모두 6점으로 된 점칸을 구성했다.

후일의 연구에서 6점의 배열이 촉독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브라유는 1824년에 점자를 발명했고, 1829년에 자신의 문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1837년 다시 수정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점자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자는 맹인들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각장애학생들은 필기를 하거나 책을 만들 때 점자를 계속 사용했다. 결국 점자는 브라유가 죽은 2년 후인 1854년에 파래 맹학교에서 공식 시각장애인용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의 모든 언어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 출처:
  • 임안수 (2000). 시각장애아 교육 기초.
    서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박두성

송암 박두성(1888 ~ 1963)

송암 박두성 선생 사진

박두성 선생은 1888년 3월 16일 경기도 강화군 교동도에서 태어나 1899년 강화도 보창 학교를 거쳐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 보통학교 교사로 취임했다. 1913년 제생원 교사로 임명되어 맹교육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평양에는 홀(Hall) 여사가 만든 4점형 한글 점자(이후 평양 점자라 함)가 사용되었고, 제생원에서는 일본 점자(6점형)가 사용되었다. 6점형 점자가 4점형 점자보다 우수 하다는 것을 인식한 맹학생들은 1920년 일본 점자 3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박두성 선생에게 6점형 한글 점자를 제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평양 점자는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을 표기하는데 두 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아 문자로 큰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박두성 선생은 홀여사에게 6점형 한글 점자를 함께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홀여사는 일본어 점자까지 4점으로 제정하여 보내면서 4점형 점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박두성 선생은 1920년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고 6점형 한글 점자 제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3-2점자(자음은 3점 으로 모음은 2점으로 제작한 점자)를 제정했으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아 다시 연구를 계속하였고, 1926년 8월에 한글 점자를 제정하여 사용해 본 결과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일반 맹인들에게 조선어 독본, 천자문, 명심보감, 편지틀, 불쌍한 동무 등 많은 점자 도서를 손수 만들어 자비로 통신교육을 실시했으며, 점자를 모르는 맹인들에게는 점자판과 점자 해설서, 조선어 독본을 보내어 문맹퇴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은퇴한 후에도 자택에 점자 인쇄 시설을 갖추고 성경책과 다른 점자 도서를 출판하여 맹인들에게 대출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맹교육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두성 선생은 1963년 8월 25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 노산 이은상은 그를 가리켜 ‘맹인의 세종대왕’이라고 칭송했다. 서울맹학교 교정에는 그를 기리는 제자들이 뜻을 모아 비석을 세우고 스승을 추모하고 있다.

  • 출처:
  • 강현진(1999). 송암 박두성 선생. 현장특수교육, 봄호,
    116-119 이종화(1973). 개교 60주년. 서울: 서울맹학교.
    임안수(2000). 시각장애아교육기초.
    서울: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